옛고향 생각

6.25동족상잔의 비극 과 아리랑

H극동 2011. 10. 14. 21:44

 '6.25 전쟁과 아리랑' 특별전시회


 6.25 전쟁 당시 외국군인들의 참전 기념품으로 제작됐던 최초의 아리랑 실크 스카프

 

 

 1951년 5월 16일 현리전투에서 전사한 강원도 출신 국군 하사의 ‘전사 통지서’와 포로로 잡힌 북한군의 ‘출생증’, 그리고 전쟁에 앞서 보내진 군사를 소집한다는 내용의 ‘군사증’.


전쟁 발발 한달 보름 만에 낙동강 방어 전선까지 밀린 전황이 특집 지도로 실린 미국 신문과 북한 병사를 회유하기 위해 맥아더 장군 이름으로 공중 살포한 전단.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낸 6.25동족상잔의 비극

 

 M4A3E8 이지에잇셔먼 전차


 

 

 

 

 

 제19 폭격전대의 B-29 폭격기들이 남한 상공을 통과하고 있다. 1951년 10월 23일의 장면이다.


 

 

 

 B-29의 원산 폭격 장면

 

 피카소의 한국전쟁

 

 폐허간 된 월미도


 중공군 포로

 

 마릴린 먼로의 한국위문공연(1954년 2월 17일)

 

 


 고아들의 식사는 초근목피

 

 가족의 죽음

 

 

6.25 한국전쟁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북한이 38선 전역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면서 시작된 전쟁

전쟁기간 : 1950년 6월 25일 ~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3년 1개월)

전쟁과정 : 1950.6.25 북한의 남침 → 연합군 파견(1950.7.7)→ 낙동강 전투(1950.7.25) →
1950.9.15 인천상륙작전 → 1950.9.28 서울 탈환 → 중공군 남하(1950.11.02) →51.6.23 소련 유엔대표 휴전회담 제의 → 휴전회담(1952.01.02) →1953.7.27 휴전협정

한국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 공산이념의 대결이라는 냉전 체제속에서 소련과 중공의

지원을 받은 북한의 김일성이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기습남침을 자행함으로써 일어났다.

 

전쟁초기 북한군은 우세한 군사력으로 개전 3일만에 수도 서울을 점령하고 두달로 채 안되어 낙동

강선까지 남진하였다.  그러나 우리 국군은 군사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온 국민과 함께 총력전으로 공산 침략군에 대행하여 싸웠다.  유엔은 북한의 불법남침을 응징하기 위해 한국에 대한 군사원조안을 결의했고, 이에 21개국이 유엔의 깃발아래 한국을 지원함으로써 공산군을 격퇴하고 조국과 자유를 수호할 수 있었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이 조인됨으로써 3년1개월간의 한국전쟁은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로 남게되었다.

 

 

 

 

 

 

 

 

 

 

 

 

1953년 7월 27일 하오 10시 정각부터 12분간에 걸쳐 조인된 정전협정문의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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