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사진가 조선희의 사진이야기
조선희는 사진계에서 흔히 말하는 비주류 작가다. 대학에서 의생활학을 전공했으며, 대학 동아리에서 배운 사진은
다큐멘터리 사진이었다. 15년이라는 시간동안 사진과 함께한 그녀는 스스로도 “기술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부족한 점을
많이 느낀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의 사진 속에는 화려한 테크닉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바로 그녀의 생각이다.
사진을 좀 볼 줄 안다 하는 사람들도 잡지나 화보 등에 나오는 패션사진을 보면 “스튜디오에서 조명 설치하고, 전문적인
스타일리스트 쓰면 누가 저런 사진 못찍나”라고 말하곤 한다. 물론 우리가 하루에도 수십 컷 이상 접하는 패션 사진에는
분명 그저 그런 사진도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개중에는 조선희의 사진처럼 ‘말하고자 하는 것’이 분명히 담긴 사진 역시 존재한다.
그녀에게 있어서 사진이란 ‘잠재의식 속에 내재된 기억들에 대한 표현’이다. 그녀의 사진은 자세히 살펴보면 한 가지 코드를
담고 있다. 그것은 바로 ‘죽음’이다.
그녀는 15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사진과 함께 했지만, 스스로 자신의 사진에 ‘죽음’이라는 내재된 기억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무려 14년이 걸렸다. 2007년 대한민국 대표 사진가 12인의 인물 위주의 패션, 셀러브리티, 영화포스터 사진을 통해서
시대의 거울로서의 사진을 집중 조명한 <거울신화>展에서 그녀는 전시 기획을 맡은 신수진(연세대·사진심리학) 교수와 그녀의
작품들을 재조명하는 기회를 가졌다. 전시 컨셉을 잡는 과정에서 그녀의 14년간의 사진을 한자리에 펼쳐놓고 하나하나 살펴보는
과정에서 그녀는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모든 감정들이 사진에 표출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지난 17년 동안 내 사진세계 안에는 아버지의 죽음이 깊게 새겨있다"
14살이라는 어린나이에 아버지를 여인 그녀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대학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으면서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죽음’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었다. 그녀는 ‘죽음’이라는 소재 안에는 3가지 사람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첫째는 떠나는 사람이고 둘째는 남겨진 사람, 그리고 셋째는 떠나가는 사람이다. 그녀는 사진을 찍을 때
이러한 요소들에 대해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녀의 결과물 속에는 이들이 분명히 표현되어 있다.
"선배와 함께 판문점에 촬영을 하러 갔다. 하지만 난 분단에 대해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단지 내 눈에 보였던 것은
오래된 나비의 죽음이었을 뿐이다. 그렇게 난 또 내 잠재의식 속에 죽음이라는 녀석을 사진에 담아내고 있었다"
‘죽음’이라는 다소 어려운 소재를 통해 사진과 가까워지게 된 그녀는 대학 졸업 즈음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화가가 붓을 들고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그려내듯이, 조각가가 칼을 들고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조각물을 만들어 내듯이 카메라를 통해 그녀가 담아내고 싶은 세상을 사진으로 표현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녀는
10여년이 지난 지금 국내 최고의 패션사진가가 되었다. “사진을 찍는 것이 너무 재밌다”고 말하는 그녀는 여전히 그녀의 생각이
담긴 사진을 찍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포토그래퍼가 된 나는 더이상 죽음에 대한 집착을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지난 작업들 속에서 잠재의식 속에
녹아있는 그 집착이 어떻게 묻어나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최고의 스타 장동건에게 스페인까지 들고간 날개를 굳이 달고 촬영하자고 했다. 그는 대체 무엇을 위해
이것을 달아야 하는지를 물었지만, 난 그저 날 위해서 그래달라고 했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날 수 밖에 없었던
내 잠재의식 속에 날개 단 천사다"
"배우 박해일을 수조 안에 가둬두고 촬영했다. 수조는 나에게 관이다. 날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언제 어디서나
나를 바라보고 있을 아버지의 눈빛과 같다"
"그녀는 나 자신이다. 남겨진 자의 외로움 슬픔, 그리고 그 어떤 것. 내 가슴 속에 흐르던 검은 눈물.
그것들은 단지 내 몫이었다"
그녀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뛰어난 패션 사진가이지만, 모든 사진은 그녀 혼자 만에 의해 찍히지 않는다. 잡지사의 에디터,
헤어스타일리스트, 아티스트, 사진가, 모델, 어시스턴트 등 적게는 8명에서 많게는 30여명 이상이 참여해서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이들은 그저 모델이 입은 옷을 화려하고 멋지게 표현하기 위해 의상 그 자체보다는 의상이 돋보일 수 있기 위해 하나의 스토리를
구성하곤 한다. 이 작업은 주로 사진가와 에디터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여기에는 우주인이 지구를 침략한다는 콘셉트에서 부터
남자친구에게 실연당한 여자 주인공의 이야기 까지 그 소재부터 줄거리까지 다양하다.
그녀는 ‘조선희식 스토리텔링’의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되도록 이면 많은 작업을 하려고 노력한다. 세계 유수의 패션 잡지 화보
촬영부터 사진전, 사진집 출판 등 그녀가 하는 모든 활동들은 그러한 노력의 일부다. 그녀는 이미 최고라는 찬사를 수도 없이
받고 있지만, 여전히 일을 하면서 배우는 점이 많다고 말한다. 항상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조선희’라는 작가를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을 감당해야만 하는 것이 힘들지만, 사진을 찍는데서 비롯되는 ‘즐거움’이라는 감정은 여전히 그녀가
힘든 작업에도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올해 3월 열렸던 '女Rheu사랑' 전시에서 그녀는 류마티스 관절염에 고통받는 환우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기 보다는
멋스럽게 표현하여 고통을 희망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환우와 유명인을 한 프레임에 담았어요. 따뜻하기만
한 사진보다는 지쳐있고 고통스러웠던 내면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아픔을 무조건 포장하려는 건 자연스럽지 못하거든요.
그리고 그아픔을 감싸안는 '희망'을 전달하는 게 궁극적인 목적이었죠."
2시간의 강의 끝 필자는 작가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인터넷 상에서 조선희라는 사진가를 바라보는 시각이 꽤나 부정적이다.
유명한 연예인이 아니면 찍지 않고, 돈 되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시선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녀는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대뜸 “제가 그래요?”라며 웃었다. 이어 그녀는 “나는 상업사진가다. 상업사진가가 돈을 벌기 위해 사진을
찍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내가 유명인이 아닌 일반인을 촬영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프로사진가의 작업은 주로 사진가와
기업사이의 작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가 개인에게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가격이 책정돼있고, 그것이 개인 고객들에게는
비싸게 느껴지는 것일뿐”이라며 “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카메라로, 또 사진으로 하는 것 일뿐”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진정한 프로이기에 항상 당당하다. 여전히 카메라라는 붓을 이용해서 사진이라는 멋진 그림을 그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진작가 조선희는 앞으로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패션사진가로서 최고의 모습들만을 보여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