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 인물

모안영/그리고 한국전쟁

H극동 2011. 1. 31. 21:36

 

          

CCTV(중국중앙텔레비젼) 1번 채널은 CCTV의 여러 방송 채널 중에서도 메인 채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채널에 비해 약간 더 격식을 차리고, 이것은 역으로 ‘재미가 없다’는 다른 표현일 수도 있고, 중국 정부를 대변하는 목소리를 담아낸다. 이 채널에서도 드라마나 영화를 방영하는데 역시 정책홍보성 내용 많다.

드라마도 시기에 맞춰 골라서 방영하나보다. 얼마 전 중국인 선장 억류문제로 중일 간에 긴장감이 고조될 때는 일본을 노골적으로 비꼬는 내용의 코미디성 영화를 방영하기에 ‘드라마 편성도 정치적으로 하나보구나’ 생각했는데, 어제 밤에는 <모안영(毛岸英)>이 연속극으로 이어지고 있다.

 

생각해보니 올해가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 60주년이자 모안영 사망 60주년이다. 모안영은 모택동(毛??)의 장남이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미군의 폭격을 받고 죽었다. 어찌보면 불쌍한 사람이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는 혁명을 한답시고 세계를 떠돌며 가정은 뒷전이었고, 어린 모안영은 영문도 모른 채 두려움에 떨며 숨어살았다. 어머니는 국민당의 처형으로 죽었고, 청소년 시절을 망명객 아닌 망명객으로 러시아 등지를 떠돌며 보냈다.

 

신(新)중국이 건립되자 귀국하였고, 아버지가 중국의 '수령'이 되어 이제 떵떵거리며 살만해졌는데 바로 이웃나라에서 전쟁이 났다. 그 전쟁에 모안영은 자원했다. 굳이 자신은 가지 않아도 되는 전쟁이고, 아버지의 혁명 동지들도 극구 말렸다는데, 가겠다고 부득부득 우겨서 참전했다고 한다. 그리고 죽었다. 이국땅 조선(한국)에서. 중국에는 이제 결혼한 지 1년 밖에 안 된, 너무도 사랑하는 아내까지 있었다. 드라마 <모안영(毛岸英)>은 이런 과정을 눈물나도록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모안영이 죽고 3개월이 지나서야 모택동은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들었고, 드라마에는 모택동이 서럽게 우는 모습까지 나온다. 모안영의 아내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남편의 죽음을 알지 못한 채 그의 편지만 기다린다. 드라마의 주요 내용은 이렇게 흘러간다.)

많은 한국인들이 모르고 있거나 가볍게 간과하는 부분이 이 대목이다. 중국은 최고지도자의 아들을 한국(혹은 조선)에서 잃었다. 지금도 모안영의 유해는 북한(조선)에 있다. 모택동이 그렇게 하라고 지시했다. 다른 전사자들과 똑같이 그냥 그곳에 묻어두라고. 중국인들이 한국전쟁에 대해 갖는 이미지는 아직도 이것으로 간직되어 있다. 생각해보자, 우리 대통령의 아들을 한국군이 참전한 어느 외국의 전쟁에서 잃었다면 우리가 그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  

 

얼마 전 중국 지도자 시진핑(習近平)이 한국전쟁을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표현했다가 한국 정치권이 들끓었다. 60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 시진핑이 굳이 그렇게 까지 표현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중국의 입장에서 한국전쟁은 <당연히 참전하였어야 할 전쟁>이었음은 분명하다. 내가 모택동이라도 참전을 결정했을 것이며, 어느 바보라도 그러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당연하다.

남한이 먼저 38선을 넘었냐, 북한이 먼저 넘었냐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전쟁은 일어났고, 중국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한참을 밀리던 한국군이 미군의 참전으로 전세를 역전시키고 게다가 기존의 억제선인 38선을 넘어 북진(北進)까지 하게 되었을 때, 이들의 입장에서 이것은 명백한 '침략'인 것이다.

 

누가 먼저 때리고 말고 하는 것을 따질 필요도 없다. 중국의 눈에는 <38선 북진 이후>의 상황만 눈에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38선을 넘은 한국군과 UN군 - 맥아더 휘하의 - 이 중국 국경선을 넘는 것은 충분히 예견 가능한 일이었고, 중국 지도부는 걱정과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여러 가지 사료를 보아도 당시 맥아더는 "이참에 중공(中共)까지 무너뜨린다"는 의지를 뚜렷이 내비쳤다. 중국 대륙에 핵폭탄을 투여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이러할 때 동네 불구경 하듯 가만히 앉아 지켜보고만 있을 지도자가 과연 누가 있을까.

민감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런 의미에서 시진핑의 발언은 어느 정도 '정상참작'이 가능하다. 노파심에 다시 강조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발언을 완전히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입장에 섰을 때' 그렇다는 말이고, 약간 어기(語氣)를 낮추거나 표현법을 돌려서 말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전쟁 - 중국에서는 이 전쟁을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이라 부른다. 미(美)국에 대항(抗)하여 조(朝)선을 도와준(援) 전쟁이라는 뜻이다. 드라마 <모안영(毛岸英)>은 잊혀져가는 이 전쟁에 대한 중국인들의 애틋한 인식에 희미하게나마 다시 한번 불을 지필 것이다. 특히나 민족주의 감정에 들끓는 중국 젊은이들의 가슴에, 기름처럼. 대륙을 옆에 끼고 살아가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흐름들이 크나큰 걱정이 아닐 수 없다.